요코하마 트리엔날레 2014
예술감독
모리무라 야스마사(森村泰昌)
<화씨 451의 예술>이라는 타이틀은, 말할 것도 없이 레이 브래드베리의 과학 소설 <화씨 451>에서 유래한다. 책을 불태우는 이른바 분서를 테마로 하는 이 소설은, 책을 읽는 것도 소지하는 것도 금지된 근미래 사회가 배경이다.
1953년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사회를 훌륭히 예견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이 '망각'의 무거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다.
이야기의 후반에 '북 피플'이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이는 한 사람이 책 한 권씩을 골라서 그것을 통째로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분서에 대한 레지스탕스(저항)로서, 책이라는 물질을 기억이라는 비물질로 치환하여 책의 정신만을 간직하고자 시도한다.
<북 피플>은 책을 금지하는 사회로부터 망명한 자들이며, 또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책을 비물질적인 기억으로 치환하려 하기 때문에, 그 존재와 행위의 양쪽 측면에 있어 현실사회의 무대 전면으로는 결코 등장할 수 없는 부재의 인간들이 된다.(살아 있는 흔적을 이 세상에서 소멸당한 '망각의 인간들'이라고 칭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망각의 인간들'이야말로 방대한 책의 기억이 담겨 있는 존재라는 것이, 브래드베리의 소설이 남기는 '망각'에 관한 중요한 교훈인 것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정보(또는 '물질')를 폐기(=망각)해 오고 있다. 그보다 더 방대한 양의 정보(또는 '물질')는 기억되기도 전에 이미 폐기(=망각)되었을 것이다. 사자, 그리고 '미래의 기억'이라고도 불러 마땅한 지금부터 태어날 생명들 또한, 기억되지 않은 기억으로서의 '망각'일지 모른다. 또한, 검열과 탄압에 의해 소멸되거나 무대 전면에 나올 수 없게 된 것도 있을 것이다.
말하지 않는 것, 말해서는 안되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보고 싶지 않은 것, 보아서는 안되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선택할 가치가 없는 것, 쓸모 없는 것. 기억의 세계에 포함될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된, 그렇게 무수한 기억되지 않은 기억들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 보자.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 보자.
'기억'에서 '망각'으로, 세계를 인식하기 위한 발판을 정반대로 옮겨 놓으면, 사회와 생활과 인생의 여러 모습들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한 반응과 놀라움, 절실함이 표현이 된다. 그와 같은 예술적 태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2014의 '망각'이라는 테마는 그러한 것이다. 그것이 잊혀진 역사(미술사)를 끄집어 내거나 회고하는 방향으로 이어지지는 않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는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 버리지는 않았을까.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버렸거나,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모른 척 가 버렸거나 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망각’의 영역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술 표현이 있다. 아티스트가 있다.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2014는 인생에서 부주의로 인한 분실물, 인류의 변함없는 분실물, 현대라는 시대의 특수한 분실물 등을 기억해 내기 위한, 이른바 ‘망각 순례’ 여행이다. 그 여정은 대략 다음과 같은 흐름이 된다.
표현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정보화되지 않고 잊혀진다. 속삭임은 귀를 쫑긋하게 세우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희미하고 나약하게 보이는 정보 속에 있는, 실은 풍요로운 확산을 감지하는 여행.
인류 역사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상통제라는 강제적으로 무언가가 말살되는 비극. 이를 냉정하게 다시 응시하는 여행.
도움이 되지 않으면 폐기되고 잊혀진다. 그래도 찬란하게 빛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예술이다. 무용으로의 여행 도중에 분명 우리들은 진정한 예술을 만날 것이다.
인간은 어른이 되는 것과 맞바꾸어 유년기의 기억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이 유년기의 기억에 깊이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그 전형이 예술가이다. 예술가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이다. 어른이 되어 상실한, 우리들 인간이 태어나는 원류로 귀향하는 여행.
모든 것을 다 본 나그네(관객)가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것은 넓고 아득한 망각의 바다다. 그것은 기억이나 정보가 도저히 못 미치는 광대한 세계다. 나그네는 이 망각의 바다로 표류한다. 각각의 도달점을 찾아내는, 각각의 여행이 여기서 시작된다.
말하지 않는 것, 말해서는 안 되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봐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 너무도 사소한 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행위. 이러한 기억의 세계에 들어갈 값어치도 없다고 판단되는 무수한, 기억되지 못한 기억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여행. 마음 전달력을 기르는 여행.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2014의 지향점은 바로 그러한 마음의 여행 이야기다.